작성일 : 14-08-14 12:11
 조회 : 1,382  추천 : 0  비추천 : 0
|
<고난의 시작>
7월 24일 집 앞 공항버스 정류장에서 잔차 박스를 안 실어 주는 버스기사와 옥신각신 하다 결국 버스 떠나고 다음차도 마찬가지 인것을 구걸하다시피 화물비 따로 물고 타면서 이번 일정에 불운과 고난은 시작 되었다.
<숙소>
취리히 공항 도착 택시로 2013년도 다녀온 도싸 소속 분 조언을 참고로 예약한 호텔로 이동, 경기장과는 대략 2.5km 정도 거리. 이동을 최소화 한다는 것이 전날 잔차 입고하면서 백을 가지고 가지 않아 두 번 왕복. 몇 년을 했는데 이런 실수를...
<수영>
전년과 달리 1시간 10분 기준 두 그룹으로 나누어 출발하는데 2013년 독일처럼 주최측에서 그룹을 나누어 주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선택. 2그룹 출발해서 잔차를 추월해 가는 생각을 잠깐 했지만 1그룹 선택. 맨 앞으로 나가야 했으나 백을 찾으러 다니다가 어벙벙 하게 출발. 약 3백미터를 손을 뻗으면 앞사람 등 내 등은 뒤사람 손이 계속 누른다.
2012년 니스때 이렇게 4백여 미터를 나가는데 물도 많이 먹고 얻어터지다 되돌아 나오고 싶은 충동이 있었는데 되돌아 나오려 해도 너무 사람이 많아 그냥 밀려갔었다. 그때와 달리 당황하지 않고 앞사람 누루지 않으려고(이화균씨가 앞사람을 건드렸다고 주먹으로 때리려고 벌떡 일어났단다) 조심조심하며 전진, 시간이 많이 걸리고 물도 먹고 몸이 뻗뻗하게 굳는다.
사람 없는 좌측으로 빠지며 편하게 편하게를 맘속으로 외친다. 호수임에도 어느 곳에서는 파도가 있다. 주변에서 속도가 맞는 사람을 찾아 가는데 몸이 무겁고 호흡이 오르지 않는다. 항상 1시간 이내를 목표로 했었지만 늦춰 잡아 1시간 4분 이내로 수정. 수영 후 슈트 벋고 시간을 보니 1시간 9분, 늦었구나 생각이 들었다.
<잔차>
미로 같은 바꿈터를 빠져나가 출발하는데 비가 내린다. 전날 오던비가 새벽에는 내리지 않아 가져간 반팔져지를 안입고 경기복을 입는 실수를 했다. 춥다 너무. 온몸에 소름에 돋아있다. 과도한 훈련으로 몸무게가 다른 대회때 보다 3,4kg이나 적은 57,8kg까지 빠진데다가 3주전 걸린 감기가 계속되어 몸에 힘이 없다.
군대 겨울 이유 없는 한밤중 얼차려 맨몸에 양팔 벌리고 찬물을 손으로 튀기는 느낌 정도로 춥다. 그런데 매주 183~206km 유명산과 명달리를 다녀온 훈련 때문인지 잔차는 잘나간다. 맞바람에 36~42를 왔다 갔다 한다. 맘속으로 천천히를 외치지만 목표한 기록과 추위 때문에 늦출 수도 없다. 주변을 보니 대략 2천번대 미만의 선수들이다. 난 3천백대 이대로 끝까지 갈수 있다면 좋으련만...
주변에 마샬 오토바이가 분주히 왔다갔다 한다. 이곳 사람들 준법정신이 투철해 조금만 실수 하면 카드 수령할 것이 겁나 간격을 벌린다. 잘나가는 잔차지만 몸은 말을 하고 있다 끝까지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어두운 불안감이 같이 타고 간다. 대략 45km 인가에서 일이 발생했다. 코피가 터졌다. 훈련 중에도 몇 번 그런 경험이 있어서 멈추지 않고 풀어보고 입으로 뱉으며 가는데 양이 많아 유바, 속도계 등에 뚝뚝 떨어진다.
첨에는 뒷목이 풀리면서 머리가 맑아 지는거 같더니 점점 목이 굳어오고 머리가 아파온다. 그렇게 코피를 흘리며 10여km 가면서 적응 안 된 시차로 정신도 없고 어찌해야할지 모르겠고 혼란스럽다 못해 멘붕 상태가 되어 버린거 같다. 마치 잔차에 내가 물건이 되어 실려가는 것 같다. 결국 화장실 있는 곳에 멈춰 휴지로 코를 막고 다시 출발, 한참을 입으로만 호흡하다 빼보니 멈추었다.
첫 랩이 끝나가는 어느 언덕 엄청난 갤러리들이 함성과 각종 도구가 있는지 시끄럽다. 정신이 없는데다 그 소음이 더 힘들게 하지만 미소를 보이며 넘어가다가 갤러리들이 없는 내리막에서 조용함에 안도하며 유바를 잡았다. 불과 1초도 지나지 않아 뒤에서 호각 소리가 들린다. 아마도 팔꿈치가 유바에 다음과 거의 동시였다. 뒤를 보니 마샬이다. 오토바이 뒤에 탄 사람이 두손으로 앞치마를 펼치듯 옐로우 카드를 보인다. 뭐지 내가 뭘 잘못했지. 앞을 보니 약 50여미터 앞에 둘이 붙어 유바를 잡고가다 일어난다. 거리가 50여 미터 앞이니 드레프팅도 아니고 배번이 없어 졌나 손으로 만져 보니 잘 붙어있다.
마샬 오토바이가 내 잔차 좌측 앞으로 나오며 나를 인도한다. 그렇게 몇백미터 가다가 상황이 궁굼해서 마샬을 부르니 잔말말고 따라 오란다. 두 번을 그랬다. 한참을 가서 마샬이 가르키는 곳을 보니 에어로바 금지 종료 표지판이 보인다. 이런 젠장 이런 곳에 왜 에어로바를 못잡아. 개나소나 다 잡을 만한 곳인데... 산속에 두군데가 있는데 경사가 심한 곳과 경사 후 바로 오른 쪽으로 꺽이는 곳은 표지판을 보았다. 그런데 아까 겔러리들이 많은 곳을 지나 바로 에어로바 못 잡는 구간 시작 표지판이 있었나 본데 내가 못 본 것이다. ㅠㅠㅠ
11년 만에 첨으로 받은 옐로우 카드가 다시 멘붕 상태를 만들어 버렸다. 옐로우 카드는 시간 벌칙 없이 처음 나오는 페널티 존에서 신고만 하면 되고 불랙카드는 6분 레드는 아웃인데 착각해서 6분 벌칙으로 생각한 것이다. 2랩으로 진입하는 시점인데 수영한 호수를 오른쪽으로 끼고 가는 맞바람 구간이다. 1랩때 36~42로 달리던... 그런데 시속 31이다. 힘이 쭈욱 빠지면서 여러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 투자한 시간과 좋아하는 술도 못 먹고 한 훈련, 이러려고 이 먼 곳까지 왔나 싶은게 완전 의욕상실에 몸은 춥고 머리는 아프고 비참함에 빠져든다.
그렇게 10여km를 가다가 6분을 줄이려면 더 밟아야 된다는 생각으로 속도를 높인다. 30km 지점 폐널티 존에 신고하러 들어가니 할아버지 두분이 접수를 받는데 내앞에 신고하는 사람이 6,7명 있다. 그날 폐널티 받은 사람이 많았다. 할아버지가 무슨 카드를 받았냐고 물어와 알려주니 번호판에 긋고 대장에 배번을 적고 받은 카드 적고 싸인을 하니 가란다. 다시 출발 열라 돌리고 돌려 다시 긴 언덕을 가는데 몸에 힘이 없다. 그래도 힘을 쓴다고 쓰니 땀이 조금 나는데 덥지 않은 땀이다. 런 포함 전 구간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이 구간에서만 몇 방울의 땀이 났다. 몇 키로 구간인지 누가 내 이름을 부르기에 뒤돌아 보니 강승규 교수다. 반갑고 고마웠다. 부상으로 경기를 못해 서포터를 했는데 그분도 맘은 아팠을 것이다. 잔차 마치고 들어오며 시간을 보니 목표 시간보다 한참 늦었다.
<런>
불안한 맘으로 출발, 당초 5km를 5분 30초~6분대로 천천히 뛰자고 마음먹고 가는데 5분 15초까지 점점 빨라진다. 후반을 생각하며 속도를 늦추어 3km가니 완전 탈진상태가 되버린다. 뒤 주머니에 젤 5개가 무거워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리고 어찌어찌 한 바퀴를 돌고나니 한발 한발 옮기는 것조차 힘들다. 걷고 싶은데 겔러리들이 많아 창피했다. 더 창피한 것은 배번에 분홍색으로 그려진 옐로우 카드의 흔적. 어떤 이는 창피해서 옆으로 돌리고 뛰던데 그러다 또 폐널티 받을까봐 그냥 앞으로 향하고 뛰었다.
두바퀴 째에는 뛰지 못하고 걷기 시작하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무엇을 위해서 11년을 앞만 보고 왔는지... 뒤돌아보는 시간들 속에 자신의 모습이 한심하고 슬프고... 한없이 무너져 내리는 몸과 마음. 이제는 그 외롭고 힘든 고통의 몸짓을 멈추자. 모든 걸 다 내려놓자고 다짐 또 다짐했다. 그리고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시간이 흘러 몸이 회복 되었을 때 지금의 몸 상태는 잊고 혹시 먼 곳까지 와서 완주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지 않겠냐고... 몇 번을 되물었고 걸어서라도 완주해야 하는가도 생각했지만 그럴 의욕이 일어나지 않는다.
한참을 걷다보니 저쪽에 반가운 유니폼이 오고 있다. 처음이자 마지막 본 우리나라 선수 김은남씨다. 날 보더니 의아해한다. 먼저 물을 받아 마시지 마라 했다. 니스때도 그랬는데 거리 어디선가 물통에 물을 받아놓고 손을 풍덩 넣어 뜬 물에 손가락 하나 집어넣어 간을 맞추어 준다. 간혹 고무장갑을 낀 봉사자도 있지만 한 보급소에 한둘 정도고 모두 맨손이다. 스위스는 거리에 분수처럼 흐르는 물을 마셔도 된다고 했지만 재사용하는 물 컵 등 분명 속이 뒤집힐 것이고 실제 그물을 먹은 나도 속이 별로 안 좋았다.
김은남씨도 몸이 상당히 안 좋아 보였지만 그때까지는 그래도 씩씩하게 뛰어가고 있었다. 부러웠지만 난 딱 반을 뛰고 칩을 반납하고 잔차와 물품을 찾아 무뇌 상태로 돌아와 세척하고 아무것도 못 먹고 곧바로 쓰러졌다.
<고난의 끝>
전체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날 공항에서 집에 가는 리무진에 잔차를 싣고 차에 오르니 아뿔사 이것이 무슨 더러운 인연인가. 7월 24일 집에서 공황 갈 때 잔차 안 실어 준 바로 그 기사다. 공황에서는 짐 실어주는 사람이 있어서 기사는 운전석에 앉아 있었는데 사람이 많아서 내가 잔차 싣는 걸 못 본 모양이다. 고속도로를 지나 몇 명의 손님이 내리면서 차창 밖으로 보니 기사가 내 자전거 백을 유심히 쳐다본다. 언제 실렸지? 하는 표정으로... 난 무언가에 홀린 기분이었다. 출발부터 안 좋았던 일진이 일정을 다 마치고 돌아온 후에야 풀려버리는 마법에 걸린 듯 한 야릇한 기분 이였다.
|
|
